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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페이지 내용 : 44 Weekly Education Magazine #TMI #카네기 #록펠러 EDU CULTURE 나보고 ‘강도 귀족’이라고? feat. 카네기 이거 서운하구먼. 그 오명에서 벗어나려 갖은 애를 썼는데 아직도 날 그렇게 기억하다니 원. 미국에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강도 귀족 Robber baron 시대’라 불러. 이 시기 미국은 엄 청난 산업화가 일어났고 그 틈을 타 어마어마하게 부를 일군 재벌들이 속속 등장했지. 대표적인 인물로는 ‘금융왕’ 존 피어폰트 모건, ‘자동차왕’ 헨리 포드, 그리고 곧 등장할 ‘석유왕’ 록펠러와 ‘철 강왕’이라 불린 내가 있단다. 우리에게 ‘강도’혹은 ‘잔인한 수완가’라는 별칭이 붙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 하나는 온갖 수 단을 동원해 경쟁 회사를 무너뜨리거나 합병하며 시장을 독점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근로자 들의 노동 강도를 계속해 높이면서도 내 입으로 말하려니 씁쓸하지만 봉급을 삭감하는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지. 특히 지금까지도 미국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노동자 탄압 사건으로 기록돼 있 는 ‘홈스테드 학살사건’은 나의 뼈아픈 아킬레스건이란다. 스코틀랜드에서 가난한 직조공의 아들로 태어나 12살에 낯선 땅 미국으로 건너온 뒤, 산전수전 공 중전까지 겪으며 부를 일궈낸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나 지금 잘 살고 있나?’를 되돌아보게 됐어. 그러다 1901년, 내 나이 66살에 회사를 JP모건 그래금융왕네 에 4억8천만 달러 현재 약 350조 원 에 넘기고 평소 생각만 하고 있었던 기부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단다. 난 자선도 하나의 사업으로 보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택하고자 고심했어. 가난한 이들에게 가 장 필요한 건 과연 뭘까? 당장의 굶주림을 모면하게 하는 건 진정한 자선이 아냐. 무엇보다 중요 한 건 부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거야. 해답을 교육에서 찾은 난 1902년 재단을 설립해 미국 전역에 2천500개의 공공도서관을 지었고 카네기공업대 현재 카네기 멜론대 를 비롯해 수많은 학교를 세웠지. 뿐만 아냐너무 자랑 같아서 쑥스럽지만 뉴욕을 대표 하는 음악 공연장 카네기홀도 내 작품이란다. 또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핵무기 감축 관련 연구 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더 많지만 난 겸손이 최대 매력이니까 여기까지만 할게. 죽기 전 내 게 남은 돈은 고작 3천만 달러 정도였어. 재산의 90% 이상을 기부한 거지. 어때, 이쯤 했으면 그래 도 ‘기부 천사’라는 애칭으로 불러줄 만하지 않니? 생각해본다고? 이런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미국 경제를 쥐락펴락한 두 거물이 있었어.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와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지. 둘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출중한 경영 수완으로 막대한 부를 일궜고 말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해 기부 문화에 앞장섰다는 공통점이 있어. 현재 전 세계를 통틀어 자선사업 부문에서 1순위로 거론되는 빌 게이츠도 이 두 조상님이 설계한 기부 방식을 벤치마킹했다고 하지. 하지만 일각에선 ‘카네기와 록펠러가 이룬 부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숨 값’이라며 둘을 기부 천사로만 포장하는 건 매우 곤란하다고 주장한단다. 자, 그럼 지금부터 두 얼굴의 어르신, 카네기와 록펠러를 만나보자고!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사진 위키백과 악덕 기업주 or 기부 천사? 철강왕 카네기 VS 석유왕 록펠러 ‘지금까지 이런 TMI too much information 는 없었다!’로 시작한 ‘알아 두면 있어 보이는 TMI’. 독자 분들의 요청에 다 시 시작합니다. TMI 시즌 2는 “재밌게 읽었을 뿐인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도움까지 됐다”는 말에 ‘어쩌면 쓸모 있을’을 타이틀로 삼았습니 다. 과학, 문학, 역사, 예술, 철학 등 다양한 분 야를 세기의 라이벌들로 재밌게 풀어볼 예정 입니다. 그저 즐겁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_편집자 어쩌면 쓸모 있을 TMI 세기의 라이벌 9 카네기 철강 회사가 출범한 1892년 6월, 카네기 소유의 홈스테드 제강소의 노동자들은 임금을 삭감당하자 파업을 벌였다. 회사 측은 사설 용역 업체에 의뢰해 건장한 청년 수백 명을 고용했고 이들을 현장에 투입해 노동자들을 마구잡이로 두들 겨 팼다. 이 과정에서 10여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6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주 州 방위군이 총을 들고 현장에 투입된 이후에야 이 처참한 폭력 사태가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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