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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페이지 내용 : naeiledu 39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입원하 면서 가족들은 온전히 의료진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회복하기까지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수민씨에게 ‘의사’는 그 때부터 동경의 대상이 됐다. “다행히 건강을 회복하셨지만, 후유증이 남아 불편한 생활 을 하시는 모습을 늘 보았어요. ‘후유증 없는 수술은 없을까’ 라는 의문이 늘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의학의 역사 를 읽으며 수술법의 발달이 결국 후유증을 줄이는 방향이라 는 것을 깨닫게 됐죠. 고등학교 시절 외과의사에 대한 꿈을 키워왔는데, 암을 수술 없이도 비슷한 수준으로 치료하는 ‘TrueBeam STx’처럼 과학기술을 적용한 후유증 없는 치료 를 의과대학에 진학해서도 계속 연구하고 싶었어요.” 우리 학교에 이렇게나 많은 식물종이? 의대 진학을 위해 학업 역량을 갖추는 것은 필수였다. 3년 동안 전 교과 성적이 우수한 편이었지만, 수민씨의 학습 과 정에서는 특히 교과 수업을 통해 배운 지식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꼬리 물기형’이 눈에 띈다. “2학년 생명과학Ⅰ 수업에서 식물군락 조사 과정을 배웠 는데, 우리 학교는 어떤지 궁금해지더라고요. 교내에 식물 들이 어떻게 분포하는지 알아보기로 했고, 조사 방법으로 교과서에 나오는 ‘방형구법’을 적용해보기로 했어요. 일정한 면적의 구획을 정해 그 안의 생물 종과 개체 수를 조사하는 방법인데요. 학교 정문과 소각장, 식당 옆 등 8곳을 선정한 뒤 ‘교내는 한정된 공간인 만큼 식물 분포가 다양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죠. 방형구를 만들고 2주간 학교를 누 비며 식물군락들을 살폈는데, 그 좁은 공간 속에서도 26 종류의 식물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어요. 새로 알게 된 식물을 포함한 11종을 정리해 교내 식물도감도 제 작했고요.” 3학년 생명과학Ⅱ 수업에서는 좀 더 심화된 주제로 나아 갔다. 발표 수업을 준비하며 알게 된, 돌연변이의 산물인 억 제 tRNA로 돌연변이를 억제하는 방식이 독특해 호기심이 일었다고. 억제 tRNA의 생성 원리와 돌연변이 억제 원리를 주제로 탐구 보고서를 준비하며 ‘생물체들은 억제 tRNA를 의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새로운 호기심이 생겼고, 이는 대학에서 연구해보고 싶은 주제가 됐다. 이 같은 ‘한 발 짝 더 내딛는’ 학습 과정에서는 교과 내용의 반복 학습이 이 뤄져 학습 효과가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학업의 새로운 즐 거움을 느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게 수민씨의 얘기다. “의사는 결국 사람과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구나” 수민씨의 학생부와 자기소개서에서 두드러지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의사로서 갖춰야 할 직업윤리와 생명의료 분야 의 윤리적 쟁점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었다. 1학년 때만 해도 의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적 지식이라고 여겼으나, 천안고 자연 계열 최상위권 학생들에게 의대는 선망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코로나19 시대를 힘겹게 버티고 있는 지금, 직업윤리와 실력을 갖춘 의 료 인력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무겁게 인식됐지만, 정부와 의료계의 팽팽한 신경전을 지켜보며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초 등학교 때 뇌출혈로 입원한 아버지를 살려낸 의사를 동경하면서부터 윤수민씨의 꿈은 한결같았다. 충남 천안고의 다양한 진로 활동과 교과 수업을 통해 의사가 갖춰야 할 윤리의식에 대해 깊이 고민한 수민씨의 꿈은 ‘후유증 없는 수술’에 한층 다가설 수 있는 외과의로 구체화됐다. 언젠가는 국제구호단체에서 의료봉사자로 일하고 싶은 목표도 생겼다. 의대 진학의 의미를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고려대 의대 윤수민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취재 정애선 기자 asjung@naeil.com 사진이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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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페이지 내용 : 40 Weekly Education Magazine 의 진로 프로그램인 ‘메이저데이’ 강연에서 만난 선배를 통 해 의대에서 필수적으로 배우는 과목 중 ‘윤리적 인문의학 수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의사가 환자, 사회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의사는 환 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우는 과목이더라고요. 의사는 결국 사람과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니 의학적 지식 못지않게 도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죠.” 그 뒤로 방과 후에 진행된 ‘생명의료 분야 디베이트’에 참가 해 한 학기 동안 친구들과 AI 의사, 줄기세포 등 찬반 논란 이 뜨거운 의료 분야의 다섯 가지 쟁점과 관련해 치열한 토 론을 준비하기도 했다. 이 경험은 의학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 계기였다. “토론을 준비하며 ‘터스키기 매독 생체실험 사건’을 알게 됐 어요. 1900년대 미국 공중보건국이 매독을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어떻게 되는지 알기 위해 앨라배마 농촌 지역의 흑인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악명 높은 생체실험인데요. 자신 도 모르는 사이 매독에 감염되고 방치된 피해자들은 정부가 무료로 건강관리를 해주는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도덕성이 결여된 의학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 건이 제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학생들이 희망 학과와 직업 체험을 학 교 밖으로 나가 수행하는 ‘커리어 인턴 십’ 활동을 통해 의대 교수와 재학생을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의료윤리에 대한 관심이 커진 상태였기에 다양한 의료윤리적 쟁점에 대해 의견을 물었 는데, 동일한 쟁점에 대해서도 견해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인터 뷰 내용과 책을 참고해 ‘의학의 인문학 적 고찰-윤리적 쟁점을 중심으로’ 를 주제로 보고서를 작성해보기로 했다. 장기이식, 인체실험, 낙태, 뇌사, 안락 사 등 다섯 가지 쟁점의 상반된 견해 를 정리하면서 여러 철학자들의 주장 도 찾아 연결시키며 나름의 생각과 이 유를 정리해봤다. “당시 만난 의대 교수님께서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 엇인지 묻는 제 질문에 ‘인류애’를 꼽으시더라고요. 환자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의사라는 직업을 제 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뜻이었어요. 이때 작성한 보고서는 각종 딜레마 상황에서 취해야 할 제 나름의 행동 기준을 세 우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우리는 왜 의대에 가는가 수시 원서 6장을 모두 의대 지원에 쓸 만큼, 확고했던 꿈을 이룬 수민씨의 최종 목표는 국제구호단체에서 의료봉사자 로 일하는 것이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보건기구 WHO 사무 총장이 된 고 이종욱 박사의 삶을 다룬 이종욱 평전 을 읽 은 것이 계기였다. 분쟁 지역에서 중립을 유지하며 오로지 환자만 본다는 원칙을 세운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일하겠다 는 목표도 생겼다고. 수민씨는 의대 진학을 바라보는 후배 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꿈이 의사가 되는 것인지, 의대 합격인지 확실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는 어머니께서 대 학 합격이라는 목표를 위해 고교 때 열심히 생활하다가 막 상 대학에 붙고 나면 다음 목표가 사라져 흐지부지되는 경 우가 많다는 얘기를 해주신 적 있어 요. 의사라는 직업, 의사에게 필요한 공부는 결코 쉽지 않을 거예요. 과연 의대 진학이 자신의 인생을 걸 수 있 을 만한 목표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 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학교생 활 역시 지나치게 의대 진학에 맞추기 보다는 다방면에서 균형 있는 경험을 쌓길 추천해요. 과학적 지식도 필요하 지만, 사람과의 소통 능력, 인문학적 소양이 무엇보다 필요한 직업이기도 하니까요.” 우리는 왜 의대에 가는가. 의대를 둘 러싼 사회적 시선이 어느 때보다 첨예 해진 요즘, 수민씨를 만나고 남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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